그럼 이번에는 조니워커와 함께 블렌드 위스키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발렌타인의 역사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창업 과정은 조니워커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어요. 발렌타인을 세운 조지 발렌타인 역시 소년 창업자였는데요. 13살 때부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장사를 배우다가 19살 때인 1827년에 자기 가게를 열고 독립을 했는데 워낙 수완이 좋아서 사업이 번창했다고 해요. 그래서 곧바로 두 번째 가게도 열고 1836년에는 목 좋은 곳으로 확장 이전까지 했는데 이때 조지 발렌타인은 상점에서 반경 10마일, 그러니까 16km 이내에 있는 고객한테는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그러니까 지금의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배송 시스템을 갖추면서 큰 돈을 벌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입지를 다진 조지 발렌타인은 18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위스키 사업에 뛰어드는데요. 이때 조지 발렌타인이 블렌디드 위스키를 개발하는 걸 앞장서서 도와준 인물이 누구냐? 바로 앞서서 얘기한 블렌딩의 대부이자 블렌디드 위스키의 선구자였던 앤드류 어셔 2세였어요. 그러니까 조지 발렌타인 입장에서는 친구인 앤드류 어셔 2세가 귀인 중에 귀인이었던 건데, 당대 최고의 블렌딩 기술자인 친구의 도움으로 조지 발렌타인은 자기 이름을 딴 발렌타인 위스키를 개발해 내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니워커의 존 워커는 똑똑한 아들을 뒀고, 반면에 발렌타인의 조지 발렌타인은 좋은 친구 덕분에 역사의 이름을 남기게 된 겁니다.
조니워커와 발렌타인을 눈으로 딱 봤을 때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발렌타인은 파이니스트 12년을 제외한 대부분의 핵심 제품이 둥근 병에 담겨 있는데, 반면 조니워커는 전통적으로 직사각형 병을 고집해 왔죠. 조니워커가 이렇게 직사각형 병을 채택한 건 상자에 담았을 때 둥근 병에 비해 낭비되는 공간이 적어서 한 병이라도 더 담을 수가 있고, 배에 싣고 갈 때도 잘 깨지지 않아서였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조니워커는 이것 말고도 또 특이한 게 있죠, 바로 기울어진 라벨인데요. 제품 정보를 한 글자라도 더 적으려고 24도로 기울인 사선형 라벨을 붙여놨잖아요. 이렇게 직사각형 병 디자인과 기울어진 라벨 역시 창업자의 똑똑한 아들인 알렉산더 워커의 업적인데요. 하지만 병 디자인이나 라벨보다 더 독특하고 파격적인 게 있으니, 그게 바로 제품을 색깔로 구분한다는 겁니다. 조니워커는 1909년부터 제품의 색깔을 입히는 컬러 마케팅을 시작했는데요. 이런 시도는 컬러 마케팅의 효시로 손꼽히는 파커 만년필보다 무려 10여년이나 앞섰던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화이트, 레드, 블랙, 이렇게 세 가지로 제품을 나누다가, 화이트는 금방 없앴고, 이후 블루와 골드, 그린, 더블 블랙까지 추가해서 컬러 라인업을 완성했는데요. 물론 18년이나 21년처럼 숫자를 강조한 제품도 일부 내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니워커라고 하면 색깔로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컬러 마케팅으로 홍보를 내온 조니워커와 달리, 발렌타인은 유난히 숫자, 즉 숙성 연수를 강조해 왔는데요. 1910년에 출시된 파이니스트는 숙성 연수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1937년에 당시로선 초 고숙성이었던 17년을 발표하면서부터 발렌타인은 본격적으로 숙성 연수를 라벨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출시된 발렌타인 17년 병을 차례로 쭉 살펴보면, 일관성 있게 17년이란 숫자를 빨간색으로 눈에 띄게 적어 놓은 걸 알 수 있는데요. 그 이후에 출시한 다른 제품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어요. 그러니까 17년 이후에 내놓은 전설의 명작 30년이라든가, 1960년에 발표한 12년, 그리고 1993년에 출시한 21년까지도 계속 숙성 연수를 강조하는 이른바 숫자 마케팅을 해온 건데요. 이후 23년과 40년까지 추가가 되면서 12년부터 40년에 이르는 발렌타인 라인업이 완성됐습니다.
키 몰트가 뭔지 다 아시죠? 키 몰트는 한마디로 핵심 몰트, 그러니까 블렌디드 위스키를 제조할 때 필요한 핵심적인 몰트 원액을 의미하는데요. 스카치 업계 거물인 조니워커의 경우에는 스코틀랜드에 29개나 되는 증류소를 갖고 있지만 이 가운데 핵심 원액인 키 몰트를 생산하는 증류소는 로우랜드의 글렌킨치와 하일랜드의 클라이넬리시, 아일라 섬의 쿨일라 그리고 스페이사이드에 있는 카듀까지 모두 네 곳이에요. 반면에 발렌타인은 요즘 뭐 싱글몰트로도 한창 인기가 높은 글랜버기를 중심으로 글랜 토커스, 밀튼더프 그리고 오크니섬에 있는 스카파 증류소 원액을 핵심 몰트로 쓰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렇게 원액을 뽑아내는 증류소가 다르고 블렌딩을 하는 노하우도 다르기 때문에 조니워커와 발렌타인은 풍미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조니워커나 발렌타인 모두 너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어서 맛의 차이를 딱 집어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조니워커는 스카치 특유의 은은한 스모키함이 잘 살아 있는 게 특징이라고 하고요. 반면 발렌타인은 부드러운 질감과 목 넘김에 강점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흔히 조니워커를 1등 스카치라고 하고 발렌타인을 2등이라고 하는데, 세계 시장 매출에서는 꽤 차이가 납니다. 스피릿 비즈니스 자료를 보면 2022년 조니워커 매출이 2,270만 상자(약 2억 430리터)였던 반면에 발렌타인은 920만 상자(약 8,280리터)였거든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 건데요. 하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인기는 글로벌 시장과는 좀 다른 거 같아요. 발렌타인 30년 같은 제품이 워낙 오랜 세월 고급 양주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보니까 기내 면세품 판매 실적 같은 걸 보면, 발렌타인이 더 앞서 있는 걸 알 수 있거든요. 아무튼 그래서인지 발렌타인의 심장으로 불리는 글렌버기 증류소에 가보면 서울까지의 거리를 적은 표지판도 마당에 세워 놨던데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팔아줬으면 저런 표지판까지 세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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