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싱글몰트가 유행이라고 해도 명절 선물이라고 하면 그래도 블렌디드 위스키부터 떠오르죠. 흔히 양주라고 할 때 생각나는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이런 게 전부 다 블렌디드 위스키이니까요. 이렇게 양주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싱글몰트와는 어떻게 다른지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말씀드리면 맥켈란, 발베니, 글랜피딕 같은 싱글몰트는 보리를 싹 틔워서 말린 몰트라는 딱 하나의 재료로 한 곳의 증류소에서 단식 증류기로 만들어 내고요. 반면에 블렌디드는 보리가 아닌 다른 곡물로 만드는 그레인 위스키와 여러 가지 몰트 위스키를 섞어서 제조하는데요.
그러면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서 만드는 블렌디드는 대체 언제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걸까요? 사실 블렌디드 위스키의 역사가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19세기 중후반, 그러니까 1850년대 이후에요. 이 무렵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위스키 거래를 하던 앤드류 어셔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1840년대부터 여러 위스키를 섞는 실험을 하다가 1853년에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글렌리벳에서 숙성 연수가 다른 몰트 위스키 여러 가지를 가져와서 섞은 뒤에 Usher’s old vatted Glenlivet Whiskey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았는데, 이게 대박을 치면서 블렌디드 위스키의 탄생을 이끌게 된 건데요. 그래서 얀드류 어셔를 가리켜서 흔히 블렌딩의 대부 혹은 블렌디드 위스키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겁니다. 아무튼 처음에는 몰트 위스키끼리만 섞다가 1860년에 그레인 위스키까지 섞는 걸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그 이후 본격적으로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블렌디드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위스키죠. 말 그대로 양주 계의 양대 산맥인 조니워커와 발렌타인. 이 두 브랜드가 어떻게 탄생해 발전해 왔으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까지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스카치를 크게 둘로 나누면 싱글몰트가 있고 블렌디드가 있잖아요. 이 둘 중에 근데 어떤게 더 많이 팔릴 것 같으신가요? 요즘은 싱글 몰트가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까 싱글 몰트가 더 많이 팔리는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텐데요. 판매량이나 판매액을 보면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블렌디드가 훨씬 더 많이 팔려요. 단적인 예로 2022년 스카치 위스키 협회 자료를 보면 전체 스카치 수출액 가운데 블렌디드 위스키 비중은 59.25%에 달하는 반면에 싱글몰트는 1990년대 이후 엄청나게 매출이 치솟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체 스카치 수출액의 32.07% 수준에 머물고 있어요. 이 얘기는 지금도 블렌디드에 대중적인 인기가 싱글몰트보다 훨씬 높다는 걸 의미하는데요. 역사적으로 따져 봐도 스코틀랜드 지방 토속주에 불과했던 스카치가 위스키 세상을 재패할 수 있었던 건 싱글몰트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더 인기가 많은 블렌디드 때문이었어요. 그렇다면 블렌디드 위스키는 어떻게 해서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위스키 시장의 대세가 된 걸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요. 하나는 바로 맛이었어요. 그러니까 100% 몰트로 만든 싱글몰트에 비해서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는 개성은 물론 좀 떨어지지만 더 부드럽고 가벼워서 먹기에 일단 편했던 거예요. 또한 보리가 아닌 다른 곡물로 만드는 그레인 위스키는 연속식 증류기로 한꺼번에 많은 양을 쭉쭉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왕창 섞어서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했어요. 이렇게 맛은 부드러우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있다 보니까 19세기 중반부터 많은 위스키 생산 업자들이 블렌디드 제조에 뛰어 들었는데요. 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대표적인 두 브랜드가 바로 조니워커와 발렌타인이었습니다.
기네스 맥주, 스미노프 보드카, 고든스 진, 잭 다니엘스 위스키, 그리고 김창수 위스키. 지금까지 이렇게 열거한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얼핏 생각하면 없을 거 같은데, 정답은 바로 창업자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었다는 거예요. 기네스는 아서 기네스, 스미노프는 표트르 스미노프, 고든스는 알렉산더 고든, 그리고 잭 다니엘스와 김창수 위스키도 당연히 창업자 이름이니까요. 그런데 세계 1,2등 스카치 브랜드 조니워커와 발렌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창업자 이름을 브랜드로 정했는데요. 우선 스카치의 최대 거물 조니워커의 설립자는 존 워커라는 분이었어요. 존 워커는 1805년 스코틀랜드 서부 시골 마을 킬마녹에서 태어나서, 불과 15살이던 1820년에 커피와 홍차, 설탕 같은 걸 파는 식료품점을 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농장을 팔아서 그 돈으로 창업을 했다고 하죠. 이후 존 워커는 이 식료품점을 키워 나가다가 위스키 거래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여러 증류소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그냥 내다 팔다가 나중에는 마치 홍차를 섞어서 팔 듯이 위스키도 이것저것 섞어서 팔아봤는데 이게 꽤 호응을 얻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 대단한 규모는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1857년 창업자 존 워커가 52세를 일기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알렉산더 워커가 사업을 물려받은 뒤부터 상황이 확 달라졌어요. 왜냐하면 1860년대부터는 몰트 위스키에 그레인 위스키를 섞는 게 합법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블렌디드 위스키가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때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알렉산더 워커가 내놓은 올드 하일랜드라는 위스키가 큰 히트를 친 겁니다. 바로 이 올드 하일랜드가 지금의 조니워커 레드나 블랙으로 발전해서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낸 건데요. 그래서 지금도 경매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조니워커 레드 옛날 병 라벨을 보면 올드 하일랜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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