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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술술

위스키는 왜 반드시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걸까? - 2

by Jayden1983 2024. 4. 22.

미국산 참나무 자체에 바닐라와 캐러멜 풍미를 만드는 성분이 많다 보니까 버번 위스키에 이런 풍미가 특징적으로 잘 느껴지는 건데요. 더구나 오크통은 한두 번만 숙성에 쓰면 나무 풍미도 확 다 빠져나가 버리는데, 버번은 다른 술을 담은 적 없는 새 오크통만 쓰니까 당연히 바닐라와 캐러멜 같은 참다운 풍미가 더 진하게 배어드는 거예요.

반면, 스카치는 이미 버번을 숙성시켰던 통을 가져와서 재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참나무 풍미가 버번처럼 진할 수는 없어요. 다만 요즘 스카치 업계에서도 버번처럼 미국산 참나무로 만든 새 오크통에 숙성하는 위스키가 늘고 있죠. 대표적으로 벤로막 오가닉 같은 건데요. 이런 제품을 테이스팅 해보면 재료부터 발효와 증류 방식까지 완전히 다 다른데도 숙성을 마치 버번처럼 미국산 참나무 새 오크통에 했기 때문에 바닐라와 캐러멜 풍미가 제법 잘 느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셰리 위스키 만들 때 쓰는 셰리 오크통은 어디서 만들까요? 셰리 산지가 스페인이니까 당연히 셰리 오크통도 스페인에서 만들죠. 그럼 스페인에서 셰리 오크통을 만들 때는 어떤 참나무로 쓸까요?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게 셰리 오크통은 스페인에서 제작을 하니까 나무도 뭐 스페인 아니면 프랑스나 영국 같은 유럽산 참나무만 쓸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유럽산 참나무를 많이 쓰려고 하긴 합니다만, 값도 비싸고 물량이 딸려서 실제로는 버번 오크통 만들 때 쓰는 미국산 참나무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를 수입해서 이걸로 셰리 오크통 만드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결국 셰리 오크통은 유럽산 참나로 만든 것 하고 미국산 참나무로 만든 것,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요. 같은 셰리 오크통이라고 해도 나무 품종이 다르면 위스키 풍미도 꽤 많이 달라져요.

그럼 어떻게 다르냐? 미국산 참나무는 바닐라와 캐러멜 풍미를 내는 성분이 풍부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유럽산 참나무는 좀 달라요. 유러피언 오크, 학명 분류에 따라 로부르 참나무라고 부르는 유럽산 참나무에는 와인이나 커피에 많은 탄닌 성분이 풍부한데요. 전문가들은 미국산 참나무보다 10배쯤이나 많다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유럽산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면 질감 자체부터 좀 묵직해지는 편인데요. 더불어 유럽산 참나무에는 정향이라고 있잖아요. 핫토디 같은 거 만들 때 넣는 그 클로브요. 이 클로브 풍미를 내는 유게놀 성분이나 스파이시한 향신료 느낌을 풍기는 과이아콜 같은 성분도 미국산 참나무보다 더 풍부해요. 따라서 유럽산 참나무, 유러피언 오크로 숙성을 하게 되면 이런 풍미가 잘 느껴지는게 당연한데요. 물론 유럽산 참나무도 품종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고 흔히 헝가리 참나무로 불리는 페트라 참나무 같은 것도 있기는 한데 이런 건 위스키 쪽에선 그다지 많이 안 쓰는 거라서 굳이 아실 필요는 없어요.

 

그럼 미국산 참나무로 만든 셰리 오크통과 유럽산 참나무로 만든 셰리 오크통 풍미가 어떻게 다른지 테이스팅을 통해 설명드리려고 하는데요. 100%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만 쓰는 탐듀에서 작년에 한국 시장 전용 코리아 에디션을 출시하면서 2006년 빈티지 싱글 캐스크로 두 가지를 내놨는데 같은 셰리 위스키이지만 하나는 미국산 참나무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로 만든 오크통에서 숙성한 거고, 또 하나는 유럽산 참나무 유러피언 오크 캐스크에서 숙성한 거였거든요. 이 두 가지를 한번 비교해서 시음해본 후 설명드리도록 할께요.

 

이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마셔 보니까요, 똑같은 셰리 와인 담았던 통에서 숙성한 거라서 말린 과일이나 뭐 견과류 같은 이런 기본적인 셰리 위스키 풍미는 비슷해요. 그런데 미국산 참나무 아메리칸 오크 제품은 오크통 나무 품종 자체가 달라서 바닐라 풍미가 훨씬 더 잘 느껴지고요. 반면에 유럽산 참나무 유러피언 오크는 스파이시한 풍미가 더 강조되는 거 같거든요. 이런 차이는 맥캘란 12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는데, 12년 셰리 캐스크와 12년 더블 오크를 비교하면, 둘 다 100%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을 했지만 12년 셰리 캐스크는 유럽산 참나무로 만든 유로피언 셰리 캐스크 비중이 훨씬 더 크고요. 반면에 맥캘란 12년 더블 오크는 아메리칸 오크 셰리 캐스크를 유로피언 오크 캐스크 다 훨씬 더 많이 썼기 때문에 풍미에서도 차이가 나는 거거든요. 앞으로 셰리 위스키를 구입하거나 테이스팅 하실 때 나무 품종도 꼭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크통 속을 시커멓게 태우는 이유?

우선 참나무를 벌목해 널빤지로 자른 뒤에 야외에 높게 쌓아 놓고 건조시켜서 탄닌을 날려 버리는데, 짧게 몇 달만 건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1년 반에서 2년 정도 말려요. 그런 다음에는 잘 마른 널빤지를 본드 같은 거 전혀 쓰지 않고 열과 습기만으로 이어 붙여서 오크통으로 조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후프를 끼워서 형태를 잡은 뒤에 불을 확 지펴서 오크통 안쪽을 굽거나 태우는 모습이에요. 와인이나 셰리 오크통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굽는 토스팅(Toasting)을 하고, 버번 오크통은 토스팅에 이어서 매우 높은 온도로 짧은 시간 동안 시커멓게 확 태우는 차링(Charring)까지 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토스팅이나 차링을 하는 이유 역시 위스키 풍미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속을 굽거나 태우면 오크통 나무 세포의 화학적 결합이 무너지면서 바닐라나 캐러멜 같은 풍미를 만드는 성분이 밖으로 잘 빠져 나오게 되거든요. 더구나 강한 불로 확 태우면 나무 표면이 시커먼 숯 성분으로 변해서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는데, 이게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면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때문에 위스키가 더 부드러워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