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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술술

위스키는 왜 반드시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걸까? - 1

by Jayden1983 2024. 4. 21.

엄청 무겁다고 말하는 오크통은 대체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흔한 200리터짜리 버번 오크통을 기준으로 하면, 텅 빈 통 무게만 보통 50kg에 달하고, 여기에 위스키가 채우면 대략 500파운드, 그러니까 226kg 정도 나간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무거워서 증류소 직원들은 보통 굴려서 오크통을 옮기는데요. 자동차 기름 넣는 주유건처럼 생긴 장비로 오크통에 위스키를 다 넣고 나면 최소 200kg을 훌쩍 넘어가는데요. 구멍에 마개를 넣고 망치로 때려서 밀봉을 한 뒤에는 굴려서 이동을 시키거든요. 이처럼 오크통 굴리는 일이 많다 보니까 증류소 직원들이 릴레이 대회를 하기도 하는데, 켄터키에서 열린 2022년 오크통 굴리기 대회에서는 에반 윌리엄스 만드는 헤븐힐 증류소가 메이커스 마크와 짐빔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위스키는 왜 오크 통에서 숙성을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병원 가서 엉덩이 주사 맞을 때 주사액 담은 용기를 보게 되잖아요. 그걸 흔히 앰플이라고 하는데요. 근데 이 앰플이라 단어 어원이 혹시 뭔지 아세요? 바로 그리스인들이 와인 저장할 때 썼던 항아리 암포라에서 나왔어요. 이렇게 그리스 시대까지는 손잡이가 달린 암포라에 와인을 담았는데 아무래도 흙으로 만든 거라 깨질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 너무 무거워서 장거리 이동이 힘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로마 시대로 넘어가서 로마인들이 정복 전쟁을 벌이다가 지금의 독일 땅 부근에서 켈트족을 만나게 됐는데 이 켈트족은 암포라가 아니라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술을 저장했던 거예요. 그래서 . 저게 뭐지하고 살펴보니까 참나무로 만든 통은 잘 깨지지 않을 뿐더러 들고 다닐 필요 없이 굴리면 되기 때문에 훨씬 편했던 거예요. 그래서 로마인들은 이때부터 오크통을 와인 저장 용기로 쓰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나무가 많고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참나무로 통을 만들었을까요? 참나무에는 타일로시스라는 세포벽이 발달해 있는데 이게 일종의 차단막처럼 작용하면서 액체가 나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아주기 때문에 참나무로 통을 만들면 일단 잘 새지 않아요. 또 참나무는 열을 가하면 잘 구부러지는 특성도 있어서 통 만들기에 더없이 좋다고 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유럽인들은 와인이나 맥주를 비롯한 여러 주류의 저장과 운송, 그리고 숙성에 참나무로 맞는 통, 오크통을 활용해 온 건데요. 위스키의 경우에는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오크통 숙성이 일반화돼요.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는 주로 위스키를 실어 나를 때에만 쓰다가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오크통에 위스키를 넣고 숙성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20세기 들어 오크통 숙성은 위스키 제조의 필수 조건이 됐습니다.

 

버번 만들 때에는 다른 술을 한 번도 담은 적이 없는 새 오크통, '뉴 오크 베럴'을 쓴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스카치는 달라요. 다른 술을 이미 담았던 재사용 오크통을 주로 쓰고, 종류가 무척 다양한데요. 일단 미국에서 버번 위스키 숙성시키고 난 뒤에 남게 된 오크통을 엄청나게 가져와서 써요. 이걸 흔히 버번 오크통, 버원 캐스크 혹은 엑스 버번이라고 하는데, 전체 스카치 오크통의 80%가 바로 이거예요. 또 그다음으로는 스페인에서 가져오는 셰리 오크통, 즉 셰리 캐스크 혹은 엑스 셰리라고 부르는 통도 많이 쓰는데요. 이밖에도 포트 와인을 담았던 포트 캐스크, 마데이라 담았던 마데이라 캐스크, 럼 숙성시켰던 럼 캐스크, 테낄라 숭성할 때 썼던 데낄라 캐스크까지 정말 다양한 오크통을 활용해요. 하지만 럼이나 포트, 데낄라 이런 건 비중이 크지 않아서, 스카치 오크통을 단순하게 분류를 하면 버번 캐스크, 그리고 셰리 캐스크, 나머지 캐스크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흔히 오크통 얘기를 할 때, 버번 캐스크는 버번 위스키의 풍미가 진하게 배어 있고, 셰리 캐스크는 셰리 와인의 풍미가 나무에 진하게 배어 있어서 이게 위스키 풍미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고 말하는데요. 사실 이거는 반만 맞는 얘기예요, 왜냐? 오크통은 그 전에 어떤 술을 담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애초에 어떤 참나무로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쉽게 말해서 버번이나 셰리냐 포트냐 럼이냐에 앞서서 처음에 어떤 품종의 참나무로 제작했느냐가 위스키 풍미에는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거예요.

그럼 나무 종류에 따라서 풍미가 어떻게 달라진다는 건지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지금 집에 버번 위스키가 있으면 아무거나 꺼내서 향을 한번 맡아 보세요. 아마 다른 건 몰라도 바닐라하고 캐러멜,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느껴지실 거예요.

버번은 왜 바닐라 풍미가 이토록 잘 느껴지는 걸까요? 바로 오크통 나무 때문인데요. 버번 위스키 숙성시킬 때 쓰는 오크통은 흔히 미국산 참나무라고 부르는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학명 분류로는 알바 참나무라는 품종으로 만드는데요. 잘 보시면 화이트라는 이름처럼 껍질이 좀 하얗죠. 근데 이게 자라기도 빨리 자라고 단단할 뿐더러 미국 곳곳에 엄청나게 많다 보니까 버번 만들 때 사용하는 새 오크통의 99.99%, 전 세계 위스키 증류소에서 쓰는 오크통의 대략 95%를 바로 이 나무로 만들어요. 그렇다면 버번 오크통 만들 때 쓰는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알바 참나무는 어떤 특징이 있느냐? 일단 다른 품종에 비해서 바닐라 풍미를 이끌어 내는 바닐린이 매우 풍부해요. 여기에 캐러멜 풍미를 더해주는 푸르푸랄과 코코넛 맛을 내주는 락톤 같은 성분도 아주 많은데요. 특히 바닐라 맛을 내는 바닐린은 나무에서 쉽게 빨리 빠져나오기 때문에 켄터키를 돌아다니면서 테이스팅을 해보면 미국산 참나무로 만든 새 오크통에 두 달 정도만 위스키를 넣어놔도 바닐라 향은 풍성하게 생겨요